해와 달이 된 오누이
옛날 옛적에 어느 마을에 엄마와 딸 그리고 아들이 살고 있었어. 엄마는 일을 하고 장을 보고 오실 때에는 맛있는 음식이랑 떡을 사가지고 오셨어. 아이들을 주려고 말이야. 옛날에는 차도 없고 말을 타고 다닐 수도 없는 때에 산길을 걸어 고개를 넘어 장터에 다녀와야 했지. 새벽에 일찍 길을 나서도 해가 뉘엿질 때쯤에야 돌아오시곤 했어.
그때까지 오누이는 둘이서 엄마를 기다리며 둘이 잘 놀곤 했지. 술래잡기도 하고 돌을 가지고 땅에 그리기 놀이도 했어. 여동생이 아직 어려서 밖에 나가서 오래 놀기는 힘드니까 방에서 놀다 보니 하루 해 때까지 엄마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곤 했어. 오빠는 동생을 다독이며 배도 고프고 무섭기도 하지만, 엄마가 곧 오실 거라고 여동생을 다독이며 놀아주고 있었지. 시골에는 저녁이 되면 산짐승들의 소리도 나고 불빛도 없는 곳으로 나갈 수도 없으니까.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엄마는 서둘러 일을 마치고 장을 보고 집으로 오는 길로 향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을 방앗간에서 받아서 이고 지고 걸음을 독촉했지. 그런데 거의 내려오는 길목에 갑자기 ‘어흥’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주춤하며 돌아보니 커다란 호랑이가 서서 위협하는 거야. 엄마는 사정을 했어. ‘우리 아이들이 기다려서 내가 빨리 가야 하니까 제발 가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러는 거야. 그래서 엄마는 떡을 하나 꺼내 던져 주고 걸음을 서둘렀어.
거의 마지막 고개를 넘어 숨이 목까지 차 있는데 또 ‘어흐흥’ 소리가 들렸어. 너무 놀라서 엄마가 거의 뒤로 넘어질 뻔했지. 엄마는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호랑이에게 부탁을 했어. ‘난 집에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서 빨리 가야 해. 제발 길을 비켜주세요.’ 호랑이는 이번에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라고 했어. 엄마는 다시 떡 한쪽을 꺼내 던져 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갔어. 짐을 등에 메고 머리에 인 채로 빨리 뛰는 것은 힘들었지만 빠른 걸음으로 호랑이로부터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다해 뛴 거야. 웬만한 장사들도 당해낼 수 없는 호랑이인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래서 귀한 떡이지만 호랑이에게 계속 떡을 던져 주며 길을 재촉해야만 했어.
또 한참을 다 와 내리막길에 집 불빛이 저만치 보이자 한숨을 돌리며 엄마는 아이들 생각에 힘을 내어 집으로 향했어. 그런데 그 순간 호랑이가 큰 소리를 내길래 떡 보자기를 만져보니 떡이 다 없어진 거야. 긴 산길을 넘어오며 호랑이에게 다 던져 준 거였어. 그 순간 호랑이는 엄마를 덮쳐 엄마까지 잡아먹어 버렸어.
아이들은 어둑해진 저녁에 엄마를 기다리며 배고픔을 달래고 있었어. 그런 사이에 멀리서 엄마 소리가 들리는 거야. 엄마 발자욱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열려는 소리가 들렸어. 똑똑한 오빠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엄마가 평소에 가르쳐 주신 대로 이야기했지. ‘누가 오셨나요? 엄마가 오신 거면 이야기를 해 주세요. 엄마가 오셔야만 문을 열어 드릴 거예요.’ 호랑이는 ‘나야, 엄마란다. 그런데 오느라고 피곤해서 목이 쉬었네.’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오빠는 한 번 손을 내밀어 보라고 했어. 그러자 호랑이는 문 창호지 사이로 구멍을 내어 하얀 분필을 한 앞발을 살짝 내밀었지. ‘엄마가 일하느라 손에 뭐가 많이 묻고 거칠어졌네. 먼저 문을 열어 봐. 살짝 찢어진 문틈 사이로 호랑이의 모습이 보이자 오누이는 호랑이임을 알게 된 거야. 분명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거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오빠는 동생을 데리고 뒷문으로 나가서 숨을 곳을 찾았어. 그러나 뒷마당에는 마땅히 숨을 곳이 없어서 나무 위로 올라가야만 했어. 숨소리도 죽이며 내려다보고 있는데 호랑이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가 아이들이 없어진 걸 보자 온 집안을 찾기 시작했어. 뒷뜰을 찾다가 호랑이는 우연히 우물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지. 호랑이는 아이들까지 잡아먹을 생각으로 어떻게든 아이들을 내려오게 하려고 했지.
‘얘들아 너희들은 그 나무에 어떻게 올라갔어? 참 신기하구나.’ 오빠는 ‘손에 참기름을 바르고 올라왔어.’라고 거짓말을 했어. 이 소리를 듣고 호랑이는 바로 부엌에 가서 참기름을 바른 뒤에 나무에 올라가려고 하다가 미끄미끄한 참기름 때문에 계속 미끄러져 내려가 아이들을 잡을 수 없었어. 너무 다행한 일이지.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아이들은 무서움도 잠시 잊고 있었어.
그때 순진한 동생이 ‘야, 이 바보야, 도끼로 나무를 찍으면서 올라오면 될 것을’ 하고 자기도 모르게 말을 해버렸어. 호랑이는 바로 뒷뜰에 있던 나무 도끼를 꺼내 와 나무를 찍으며 올라오기 시작했어. 순식간에 오누이는 올라오는 호랑이를 보며 두려워 떨기 시작했어. 어떻게 해야 할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오누이는 더 높이 나무 끝까지 올라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자 울며 하늘을 향해 기도하기 시작했어. ‘하느님, 저희를 제발 구해주세요. 저희를 구하시려면 새 동아줄을 내려주셔서 붙잡고 올라가게 해주세요.’ 그러자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어. 정말로 너무 신기한 일이지. 오누이는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호랑이에게서 피할 수 있게 된 거야.
이 광경을 본 호랑이는 똑같이 하늘을 향해 빌며 기도했어. ‘하느님, 제가 올라가게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그러자 이번에는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셨어. 그것도 모른 채 호랑이는 올라가다가 결국 줄이 끊어져 떨러져 죽고 말았지. 이때 호랑이가 떨어진 곳은 옥수수밭이었어. 그래서 호랑이의 피가 묻어 옥수수잎에 붉은 무늬가 생긴 거라고 해.
하늘에 올라간 오누이는 각각 해님과 달님이 되었어. 어린 동생은 밤을 무서워해서 다시 기도를 해서 오빠가 달님이 되고 동생은 해님이 되었다고 해.
한국 호랑이와 떡
이 이야기는 수십 번이 아니라 수백 번을 더 들었던 이야기다. 엄마, 아빠, 할머니, 이모들까지도 어려서 대청마루에 누워 라디오나 TV도 흑백 영상만 나오는 시절부터이다. 멀지 않은 외갓집 수원에는 외할머니 댁 대청마루가 아주 넓었다. 중국 대사를 지내신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외삼촌이 항상 반겨 주셨다.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예쁜 새 구두를 신고 갈 때면 동네 아이들은 모두 다 서울에서 온 아이를 구경하러 몰려오곤 했다. 엿을 가마솥에 굽고 인절미를 구워 주셨던 작은 할머니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사실 너무나 무섭기만 한 이야기였다. 어린아이를 두고 집을 나서야만 했던 엄마의 이야기는 슬프기까지 하다. 막내인 나에겐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꽤 많았다. 어른들이 출타하시면 언니 오빠가 집에 올 때까지 혼자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주 나를 데리고 다니셨지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후에는 수업이 제일 먼저 끝난 내가 집에 먼저 도착하곤 했다. 꽤나 자주 혼자 집에서 식구들을 기다리던 나는 아마 이 이야기 속에서 이미 배운 것 같다. 혼자 있을 때가 있을 수도 있고, 누가 오면 함부로 문을 열어 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내 생일은 구정 즈음이다. 어려서 내 생일은 설날 상을 차리는 것과 함께 시작했다. 엄마는 설날 떡을 받을 쌀과 고기 음식들을 장만하시면서 네 생일도 같이 해야지라고 하셨다. 따로 생일상을 받지 못한다는 불평은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생일상이 더 풍족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떡’이란 명절에 먹는 음식이니까. 1년에 몇 번 안 되는 명절과 어른들의 생신이 되어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명절이 되면 엄마는 좋은 쌀을 따로 준비하셔서 단골 방앗간에 가서 엄마만의 방법대로 쌀과 소금과 비법들을 설명해 주고 떡을 주문하신다. 그렇게 갓 뽑아온 떡의 쫄깃함과 부드러움은 입안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 그 맛을 혀는 오래 기억하게 된다. 다음 명절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맛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의 떡 하나는 요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떡의 차원을 넘어선다. 흔하디 흔한 떡의 의미가 아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생명과 바꾸어 떡을 하나 던져 주던 엄마의 마음은 동냥하듯 주는 게 아니었다. 시간을 벌어 아이들을 지키려던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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