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자란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국의 생일상 이야기

생일 전날 밤이면 엄마는 늘 미역을 물에 담가 두셨다. 옛날 미역은 더 건조했던 건지 모르지만 항상 미리 준비하셔서 저녁에 미역국을 끓이셨다. 요즘엔 20분만 담가도 쉽게 불릴 수 있고 잘라져 있기도…

미역 생일상

생일 전날 밤이면 엄마는 늘 미역을 물에 담가 두셨다. 옛날 미역은 더 건조했던 건지 모르지만 항상 미리 준비하셔서 저녁에 미역국을 끓이셨다. 요즘엔 20분만 담가도 쉽게 불릴 수 있고 잘라져 있기도 해서 잠시 담근 후 바로 요리할 수 있는 미역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불린 미역을 참기름 몇 방울에 살살 볶다가 물에 살짝 담가 핏기를 뺀 소고기 한 줌을 넣고 끓여내는 소고기 미역국은 생일날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집에서 미역국 냄새가 나면 누가 생일인가 하곤 했다.

엄마가 미역을 요리하실 때 미끈미끈한 질감 때문에 살짝 만져 보곤 신기하기만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내겐 바다 미역이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세계였다. 미역도 좋은 미역을 사야 한다고 다니시던 경동시장에서 단골집만 찾으셔서 졸졸 따라나서 시장 구경을 할 때면 철없이 신나기만 했었다. 너무 많은 상품들이 즐비한 요즘엔 정말 좋은 미역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그중에 현지 직송 등 생산지가 분명한 것을 확인하고 구입하곤 한다. 우리는 어느새 음식의 깊은 맛을 음미하고 기억하는 일에 점점 둔감해진 채 살아가고 있다.

경동시장에 가면 미역뿐만 아니라 국물 낼 때 쓸 멸치와 다시마 등을 상자로 구입하면 짐이 금세 늘어나 짐을 들어주시는 아저씨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나절 다녀와서 미역을 담그시는 엄마의 뒷모습은 언제나 피곤이 가득해 보였지만, 생일 상에 올릴 음식 준비로 눈을 마주칠 시간이 없었다.

미역국에 홍합을 넣어 홍합 미역국, 새우를 넣어 새우미역국, 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멸치 육수에 담백한 미역국을 끓이기도 한다. 그래도 생일 날엔 반드시 소고기 반 근을 넣어 한 냄비 가득 소고기 미역국이 상에 오른다. 소고기는 미역국, 잡채, 불고기에 모두 들어가야 해서 꼭 있어야 할 중요한 재료였다. 엄마가 동네 단골 정육점에 전화해 두시고, ‘막내야, 가서 소고기 좀 사 와라.’ 하시면 돈을 받아들고 심부름을 하러 나선다. 그런 심부름은 거의 내 독차지였다. 언니 오빠들은 공부로 바쁠 때이기도 하고 심부름만이 내가 엄마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심부름을 다녀오면 엄마는 ‘좋은 것으로 주셨구나’ 하셨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미국에서 육류는 다 패키지로 비닐팩에 정량으로 포장해 파는 마트에서 빛깔을 보고 부위를 찾아 구입하긴 하지만, 정말 좋은 고기가 어떤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부위별로 비싼 것이 고급스러운 품질이려니 하는 편견이 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차려진 생일상에는 미역국, 소고기 불고기, 잡채, 생선전, 녹두빈대떡, 삼색나물이 늘 기본으로 올랐다. 생선찜 등이 어른 생신상에는 더해지곤 했다. 간식으로는 식혜, 수정과, 예쁘게 빚어진 화전과 떡집에 맞춰 둔 백설기나 무지개떡이다. 아주 평범하지만 너무나 특별한 생일상은 정말 기다려지는 1년에 한 번 받는 나를 위한 만찬이었다.

옆에 앉아 엄마 손끝만 바라보고 있는 내게 엄마는 찹쌀 반죽을 동그랗게 빚어 경단을 만든 후 꿀물을 부어 한 공기 주시면 나는 좋아라 하며 신나 입안에서 살살 녹아드는 경단을 굴리며 음미하곤 했다. 정말 꿀맛이었다.

엄마는 집 형편이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생일상만큼은 잊지 않으셨다. 엄마가 손수 한 가지씩 마른 나물을 불려 한 편에 두신 채로 녹두를 불려 갈아낸 후 두부를 꼭 짜 빈대떡을 준비하셨다. 생선가게에서 전감으로 떠 온 생선에 밀가루를 묻혀 계란을 입혀 전을 부치셨다. 전을 부치는 일은 중학교를 다닐 때쯤에야 거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착한 언니들이 마루 한켠에 앉아 전을 부치고 있으면 난 옆에서 한 점 먹다가 혼나기 일쑤였다.

여섯 식구라 1년에 여섯 번의 생일은 엄마 혼자 하시기에 큰 일이었을 거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미국에서 우리 가족의 생일 음식을 준비하면서 말이다.

어느 생일날엔 바쁜 업무로 퇴근이 늦어 결국 케이크 하나를 사 들고 들어왔다. 촛불을 끄며 웃는 아이를 보면서도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여섯 번의 생일상을 혼자 준비하시던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그 일을 해내셨을까? 항상 마음 한켠에는 엄마의 생일상을 그리는 마음이 가득해서 우리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일하는 엄마의 빚진 마음이다.

유학생활에서 처음 차린 남편 생일상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미역이 큰 몫을 했다. 고기, 생선, 야채들은 현지 조달이 가능하지만 마른 미역과 고사리 등 이민 가방 가득 채워 주신 재료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생일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쳐 놓고 제대로 된 생일상을 차려 볼 생각이다. 재료도 이젠 미국에 H Mart가 들어선 전후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온라인으로도 미국 어디서든 받을 수 있으니 더 이상 핑계거리가 되지 않는다. 물론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미리 준비하면 가능할 것 같다.

엄마가 차려 주시던 생일상을 우리 가족들도 미국에서 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그런 가슴 가득한 행복감을 선물로 주고 싶다.

어쩌면 생일상이라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가장 따뜻한 선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