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사, 나이 문화, 밥 한 끼, 그리고 정(情)에 대하여
일하는 엄마 때문에 긴 미국의 여름방학에도 우리 아이들은 한국 방문을 자주 하지 못했다. 자주 가야 2, 3년에 한 번이고 길어야 2주였다. 물론 비용도 많이 들지만, 그보다는 휴가가 길어야 3주인 시간들을 쪼개 써야 했어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데리고 다녔지만, 큰애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아이들만 함께 보내기도 했다. 외숙모가 선생님으로 근무하시는 초등학교에 가서 한국 친구들도 겪어 보게 하고, 즐거운 쇼핑과 한국 음식은 물론 즐거운 경험이다. 오랜만에 온 우리를 항상 반겨 주시는 가족들은 그냥 사랑이다.
미국에서도 시골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촌 도시에 살다 보니 뉴욕, 뉴저지나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인들보다 더 심히 편하게 사는 미국식의 삶을 살다 보니 한국에 갈 때면 고민이 커졌다.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고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지금 다시 아이들을 보낸다면 조금도 많이 설명해 주고 아이들과 한국을 같이 돌아보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생각이다. 두 아이 모두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누가 뭐라 해도 머릿속은 외국인이다. 이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한국이란 정말 너무도 신기했을 것 같다.
물론 항상 아쉬운 엄마의 마음으로 바라봐서 그렇긴 하다. 지금이라도 한 가지씩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시작해 본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한국의 모습은 그대로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무수히 ‘엄마는 왜 그럴까, 아빠는 왜 그러실까?’ 하며 질문을 했을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얼굴색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 견뎌내야 했을 그 많은 다름의 의미들과 함께 말이다. 외국에서 아이들을 처음 길러 본 우리들만큼이나 얼마나 생소하고 큰 일이었을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하나씩 엄마의 마음으로 풀어보고 싶은데 잘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려움이 앞서지만 첫발은 이미 내디뎠다.
첫 주제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났을 때를 위한 주제로 딸과 미래의 손주에게 이야기하듯 풀어나가려 한다.
한국의 가족과 친지들을 만날 때
한국에 가서 이것은 하면 안 되고, 저것은 꼭 해야 한다는 정해진 규칙은 없단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가장 소중하니까.
그래도 한국에 가기 전에 한 번쯤 알고 있으면 좋을 것들을 이야기해 보려고 해.
사실 너희들은 미국에서 한글학교도 다녔고,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도 많이 보면서 엄마보다 더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접했지. 드라마를 보면 그 나라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관계, 말투와 예절까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아.
그래서 엄마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국 드라마를 예전만큼 보지 않을 수도 있고, 한국에 가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궁금한 점도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엄마가 기억나는 몇 가지를 적어 보려고 해.
인사
한국에서는 누군가를 만나면 먼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단다.
미국에서는 반갑게 포옹을 하거나 악수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방법이란다. 특히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을 만날 때는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아. 꼭 깊이 허리를 숙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면서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실 거야.
사실 인사의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와 예절도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엄마는 한국에 가서 누구를 만나든 먼저 따뜻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나이를 물으면
한국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지. 엄마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가 대뜸 나이를 물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그런데 교회나 한인 사회에서는 미국에서도 가끔 그런 질문을 받곤 했단다.
한국에서 나이를 묻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먼저 상대방의 나이를 알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야. 한국어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있고, 나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해지는 경우도 많거든. 그래서 나이를 알면 실수를 줄일 수 있어.
또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금세 친해지는 경우도 많단다.
한국 사람들은 같은 나이인 것을 알게 되면 괜히 반갑고 가까워지는 경우가 있거든. 만약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태어난 연도를 이야기해도 되고, 몇 살이라고 말해도 괜찮아.
너무 당황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대부분은 상대방을 평가하려고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고 싶어서 묻는 경우가 많단다.특히 가족이나 친척이라면 더욱 그럴 거야.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마음에 “우리 ○○이가 벌써 몇 살이 되었지?” 하는 궁금함도 있을 테고, 네가 어떻게 자랐는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을 거란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더라도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밥 먹었니?
이 질문은 사실 엄마도 한동안 헷갈렸던 말이란다.
밥 먹을 시간도 아닌데 “밥 먹었니?” 하고 물으시는 경우가 많았거든. 엄마는 어릴 때 꽤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어. 그래서 이미 밥을 먹고 왔다고 말도 잘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차려 주시는 밥을 또 먹고 온 적이 여러 번 있었단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주시는 밥은 먹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
오랜만에 이모 댁에 찾아가면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 주시고, 밥도 수북하게 담아 주셨어. 어렵게 다 먹고 나면 어느새 밥공기는 다시 가득 채워져 있었지.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조금 곤란하기도 했단다. 배는 이미 부른데 남길 수도 없고, 또 정성껏 차려 주신 음식을 마다하기도 어려웠거든.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아마 그런 것이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정(情)’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한국에서는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부르잖아. 식구라는 말 자체가 한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도 해. 그래서 한국의 어른들은 누군가를 가족처럼 가깝게 생각하면 가장 먼저 밥부터 챙겨 주시는 경우가 많단다.
물론 정말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시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는 “잘 지내니?” 또는 “반갑구나” 하는 마음이 담긴 인사이기도 해. 미국에서 사람들이 “How are you?” 하고 묻는 것처럼 말이야.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밥을 챙겨 주고 싶다는 마음이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되기도 한단다.
그렇다고 누군가 “밥 먹었니?” 하고 물을 때마다 무조건 안 먹었다고 할 필요는 없어. 이미 먹었다면 “먹고 왔습니다.” 또는 “조금 전에 먹었습니다.” 하고 이야기하면 된단다. 만약 더 권하시더라도 “배가 많이 부르지만 조금 맛볼게요.” 하고 부드럽게 말하면 대부분 괜찮아.
중요한 것은 밥 자체가 아니라, 너를 챙겨 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란다.
선물을 받을 때
우리도 누군가의 집에 방문할 때는 가벼운 선물을 가져가잖아. 여기선 초대를 받으면 꽃을 사 가기도 하고, 어른들은 와인 한 병을 들고 가기도 한단다.
한국에서는 오랜만에 만나면 어른들이 반갑다며 만나자마자 용돈을 주시는 경우가 있단다. 처음에는 돈을 받는다는 것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
한국에서는 결혼식에 가면 축의금을 내고, 장례식에 가면 조의금을 봉투에 넣어 전하기도 하잖아. 돈으로 선물을 하는 이런 문화는 미국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
엄마가 어렸을 때는 이모 댁이나 외삼촌 댁에 가서 천 원이나 오천 원을 받으면 정말 큰돈처럼 느껴졌단다. 그 시절에는 그런 용돈을 친척집에 갔을 때나 받을 수 있었거든. 생일이나 명절에는 옷이나 필요한 물건을 선물로 받는 경우는 있었지만 현금을 받는 일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서 친척분들이 “용돈해라” 또는 “차비해라” 하시면서 주시는 돈은 정말 뜻밖의 선물처럼 느껴졌지.
미국에서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돈을 받는 일이 흔하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감사합니다” 하고 웃으며 받으면 된단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선물이나 마음으로 보답하면 되고, 꼭 바로 갚아야 한다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
한국에서는 그런 용돈이 사랑과 관심의 표현인 경우가 많거든. 돈을 받는 것이 수치스럽거나 이상한 일은 전혀 아니란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한국에 가면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여기저기 다니며 돈 쓸 일이 많을 텐데 무엇을 사 주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용돈으로 마음을 표현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야.
이모도 너희들이 한국에 갈 때마다 큰 용돈을 챙겨 주시곤 하잖니. 엄마는 그럴 때마다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단다. 그래서 언젠가 한국의 조카들이 미국에 오면 좋은 곳도 구경시켜 주고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
그렇다고 이런 것을 당연하게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알겠지. 선물은 어디까지나 주는 사람의 마음이니까. 꼭 주고받아야 하는 의무는 아니란다. 우리 가족을 돌아보면 이모나 고모들이 조카들을 특히 많이 챙겨 주셨던 것 같아.
자주 만나지 못하니까 어쩌다 한 번 만나면 반가운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이나 용돈으로 표현하시는 거란다. 고마운 일로 받아들이면 좋겠어.
관심
한국의 친척들은 때로는 조금 참견이 많아 보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질문을 많이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단다. 학교, 직장, 결혼 등등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대부분은 너를 궁금해하고,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경우가 많아. 문화는 다를 수 있지만 그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관심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훨씬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도, 네가 어디에 살든 가족은 가족이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 생각이 조금 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가족인 것 같아.
미국에서 태어난 너희들에게는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일들도 있을 거야.
요즘에는 한국에도 외국인과 교포들이 많아져서 예전보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문화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사람들은 너희가 어떻게 보이는가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의 가족으로서 반갑게 맞이하고 한국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단다.
짧은 만남일지라도 이번 여행이 한국의 가족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너희 뿌리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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