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공항에서
14시간 걸려 도착한 미국 첫 공항은 애틀랜타 공항이었다. 티켓팅을 할 때, 우리가 가야 할 곳까지 직행이 없어서 제일 가까운 큰 도시로 온 것이다. 도시 이름을 알려드렸더니 친하게 지내던 오 선생님 내외분이 가는 방법부터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쉽게 티케팅을 할 수 있었다. 오 선생님께서 아는 분을 소개해 주신다고 하셨는데 초행이라 망설이다가 도움을 받기로 했다.
누구의 도움을 받는 것조차 쉽사리 마음이 동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따르는 것이 맞을 것만 같았다.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오신 오 선생님께서 직접 낚시를 하셔서 잡은 장어구이를 숯불에 구워 주시면서 미국 생활 이야기를 즐겁게 들려주셨는데, 지금은 호주에 아이들과 정착하셨다고 한다.
사람 인연이 무엇일지. 외국에 살면서 스쳐 지나간 인연이지만 오래도록 남는 분들이 몇 분 있다. 아무것도 아닌 듯 지나왔는데 이제 와 보니 그분들의 마음이 어떠한 것이었을지를 조금 가늠하게 된다고 할까. 그렇게 선뜻 내미는 손길도 쉽지 않지만 믿고 내딛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다.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가능했던 시간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환대
공항에 내리자마자 숨도 고르기 전에 마중 나와 주신 오 선생님의 지인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역시 미국 차가 크다더니 그 밴으로 이민 가방 3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좀 죄송하지만 이민 짐이라 어쩔 수 없이 신세를 지기로 했다. 이런 인심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1시간 정도 달려 그분들의 집에 도착했을 때 또 한 번 감탄한 것은 방이 대여섯 개 되는 2층 집의 규모와 구조였다. 유학생 시절을 끝내고 첫 직장으로 가는 중에 방문한 이 집은 드림하우스였다.
그림 액자 프레임을 만드는 사업을 하시는 이 가정은 가톨릭 성당에 다니시는 분들이었다. 말씀 한마디부터 너무 편안하게 해 주셔서 수줍고 어설픈 미국 새내기였던 나는 2층 방에서 편안한 첫 밤을 지낼 수 있었다. 시차와 긴 비행 시간으로 피곤했던 우리를 차마 깨우지 않으시고 기다리셨던 듯 아래 층은 10시가 되도록 조용했다. 일어나 차비를 하고 갈 준비를 하려는데 자꾸 하루 더 있다 가라고 하셨다. 우리에 대해서 너무 좋은 이야기를 들으셔서 좀 사귀고 알아가자고 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렌터카를 빌려 내려갈 생각이어서 서두르기로 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플로리다주이고, 여기는 조지아주라서 몇 시간을 달려야 한다. 그 순간 사모님의 말씀이 여기서 1시간 거리라고 하시는 게다. 이유인즉슨 오 선생님께서 도시 이름만 이야기하고 주 이름을 알려 주시지 않는데다가 같은 이름의 작은 도시가 조지아주에도 있어 이분들은 아주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하신 상황이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가까운 렌터카 센터로 우리를 데려가 주셨다. 사실 이럴 경우에 우리는 애틀랜타에서 굳이 이 댁으로 오지 말고 환승해서 비행기로 바로 가는 것이 훨씬 나을 뻔한 것이다. 허허 웃으며 모두 짐가방을 나르기 시작했다.
플로리다로 향하는 길
다시 가방을 꾸려 렌터카에 싣고 길을 떠났다. 자그마치 5시간이 넘는 긴 드라이브였다. 호텔 예약도 하지 않은 상태라 마음은 급한데 옆에 앉아 남편에게 지도를 읽어 주며 길잡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잠시 쉬어 가려고 들어선 작은 동네는 거의 어두침침한 슬럼가의 모습으로 보인 곳이었다. 말로만 듣던 가서는 안 될 것 같은 곳이라 계속 달리다가 맥도날드 간판을 보고서야 차를 세웠다. 미국에서는 잘 모르는 동네라면 굳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하이웨이를 끼고 맥도날드와 주유소들이 많으므로 그런 곳에서 멈추는 것이 안전한 것 같다.
지금 같아서는 설상 슬럼가에 들어선다고 해서 그리 무섭지 않다. 대낮인데도 무섭게 느껴진 것은 미국 초짜여서 쓸데없는 선입견으로 겁을 먹은 것뿐이다. 미국의 도시엔 어디나 보통 부촌들이 따로 위치해 있다. 슬럼가나 저소득층의 주택가들은 구도시를 주변으로 한쪽으로 있는 것이 흔하다. 무턱대고 겁을 먹을 일은 아니다.
이렇게 거의 6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곳에서 제일 큰 호텔로 들어가 일단 2주 예약을 했다. 아파트를 구하고 새로운 곳에서의 새 출발을 위해 갈 길이 태산이다. 돌고 돌아왔지만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숨을 돌리고 한국의 가족들에게 먼저 연락을 드렸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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