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활이 이민자의 삶으로 이어지는 일은 흔한 일이며 누군가에겐 아직도 꿈을 꾸는 일일 수도 있을 게다. 유학생인 남편을 만나 거의 무작정 따라나섰을 때 난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결혼 전까지 난 해외여행조차도 한 번 가 본 적이 없었다. 잡지나 책을 통해 외국 생활에 대한 것을 접해 보았을 뿐, 너무 생소한 아주 고리짝 시대의 이야기다. 이야기하기도 무색하다.
매운맛을 좋아하고 고추장과 김치가 없는 삶은 꿈꾸기조차도 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학 가는 친구들이 있어도 그리 부럽지는 않았다. 그러던 내가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나선 일은 정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었다. 천지개벽과 같은 일이 벌어져서 엄마는 막내딸의 결혼을 처음엔 반대하기로 마음먹으셨었다.
그런 내가 이젠 한국을 떠나 이 먼 곳에 자리 잡아 살아가고 있다. 이젠 한국보다 미국이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여기가 집이 되었다. 떠나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다. 공부도 더해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어엿한 리더로 꽤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신기하고 놀라울 뿐 아니라 내가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 열심히 잘 살아왔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만큼 산같이 느껴졌던 이민자로서의 삶을 하루하루 잘도 버텨왔다.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지만 혼자 자문자답하며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미국에 대해 배우며 미국인들 속에서 그들의 문화를 배우며 살아가려고 노력은 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온 것 같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결혼을 하여 영어권에서 자리를 잡은 내겐 이미 한국인으로서의 틀이 제법 갖춰져 있는 상태였다. 그 후에 학사와 석사 학위를 딴다고 해서 내가 미국인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의 전문지식을 더 쌓은 것뿐이다.
열심히 살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국 여성의 긍지를 잊지 않고 남들보다는 항상 조금은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잘 살아내겠다는 의지의 한국인이기 보다는 미국 생활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찼던 것 같다. 이게 될까 하는 반신반의 속에서 어찌 보면 무대뽀같은 씩씩함도 있었다. 미국인들 틈에서 어색한 영어로 소통하며 사는 일이 항상 즐겁지는 않았다. 항상 어느 정도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맴돌았다. 나만큼 불편함을 그들도 느끼는 것을 알아서 서로 너무 큰 기대 없이 대하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물론 일만 잘하면 될 것 같지만, 세상은 어디나 똑같다. 일만큼 인간관계가 중요한 것은 미국도 똑같다. 같은 프로젝트와 팀 내에서 어느 정도의 신뢰를 쌓아가는 일은 일의 성과를 내는 데 무척이나 중요하다.
처음엔 일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며 조용한 동양여자인 척하며 직장생활에 고인돌처럼 묵묵히 일에만 몰두했었다. 경력이 늘어가며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영어로 서툴러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조금씩 사람들의 옆에 가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일도 물어보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물어보고 같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첫 스텝을 밟은 후에 그 안에서 나는 점차 내 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물론 그중에서 거의 인종차별주의자처럼 느껴지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한 번은 유럽에서 일할 때였다. 그녀는 나의 보스로 새로 부임해 왔는데 나를 몰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마 내가 매니저인 그녀보다 경력이 많아 성가시게 느껴졌을 것 같다. 거리두기로 시간을 끌며 일을 지연시키더니 본격적으로 팀을 나누려고 했다. 정신적으로 좀 지쳐가게 만들어 다른 팀원들이 말리는 데도 2년 후에 나는 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냥 대책 없는 사람이어서 공식적으로는 나를 하대하지 못했지만 은근한 따돌림을 정면으로 마주했었다.
또 한번의 난관은 미국에서 였는데, 그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지독히 자존감이 낮아 내가 잘해내는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1년 정도 말없이 내 일을 해내는 성과를 보이자 스스로 다른 부서로 옮겨갔다. 1년의 차가운 냉대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불편한 일이었다. 다행히 항상 어디서나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 보이지 않게 나를 응원해 주고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상부의 디렉터들이 모든 일을 지원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계획하던 대로 회사의 기대에 부응하여 일을 잘 해낼 수 있었다.
겪을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할까 하는 갈등과 떠나고 싶은 생각들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그러나 지내고 보니 정말 그중 좋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가득 느껴져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지내고 보니 누가 누군지 정확히 보였다.
미국에서 일하면서 얻은 것은 미국 시스템에 대한 신뢰이다. 내가 열심히 하다 보면 가치를 언제나 인정받을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다는 생각이 든다. 부딪쳐 겪어 내린 결론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생각도 없다. 들은 얘기로는 일반적인 추론에 그칠 것이다.
정직하게 세금 열심히 내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게 좀 바보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미련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았고 만족스러울 만큼의 결과를 얻었다고 느껴지는 데는 나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나는 나를 결코 잃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나와 나의 가족의 행복을 유지하고 지켜나갈 만큼의 충분한 자원과 여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엄마로서 직접 겪어보고 살아볼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외국인의 모습을 띠며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능력이 뛰어나도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 사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와 자부심이 내게 생겨났다. 쉽지만은 않지만 살아갈 만하다는 것, 충분히 노력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라는 것에 대한 작은 믿음이 생겼다. 내가 보고 겪은 미국과 미국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생긴 것 같다.
퇴근하며 집에 들어오는 순간, ‘아 이제 한국이다’라고 말한다. 두 개의 문화를 조화롭게 누리며 살려면 조금 더 이해가 필요하고 참아야 할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만큼 더 많은 경험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우리는 2개의 나라에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일
유학생활이 이민자의 삶으로 이어지는 일은 흔한 일이며 누군가에겐 아직도 꿈을 꾸는 일일 수도 있을 게다. 유학생인 남편을 만나 거의 무작정 따라나섰을 때 난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Leave a Reply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